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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08 주일설교요약"부모공경, 축복과 저주의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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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산지기 작성일2016-05-14

본문

제목> 부모공경, 축복과 저주의 분기점(*어버이주일)
성경> 창세기 9:20-27
찬송> 64, 회중찬송,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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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는 신앙생활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관계입니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믿음도 좋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관계를 좀 더 세분화해 보면 무엇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이 두 관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가 좋습니다. 그래야 바른 믿음입니다. 간혹 하나님과의 관계는 좋은 것처럼 보이는데 사람과의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믿음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도피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야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첫 번째 되는 관계가 가족관계입니다. 가족관계는 우선적으로 부부관계가 있고 그 다음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 중에서 우리는 오늘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서로를 배려해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기독교, 효의 종교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이 세상에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는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되어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들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부모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관계라고 했는데... 그러면 부모와의 관계를 잘해야 바른 믿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관계라는 측면에서 부모의 입장에서의 자세 한 가지, 자녀의 입장에서의 자세 한 가지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부모의 입장에서: 끝까지 믿음으로 삽시다.
오늘 본문은 노아의 일생 중에 있었던 한 사건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아는 노아는 홍수와 관련되어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120년 간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곁에 주위에 함께 격려하고 달려가 줄 신앙적 동지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조금 낫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철저한 영적인 고독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 본 사람인 것입니다.
6:9에 노아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6:9)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홍수사건 이후 그의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 노아는 너무 부끄러운 실수를 하게 됩니다. 노아는 자신이 경작한 포도열매를 가지고 포도주를 담았습니다. 그 포도주를 즐겨 마셨던 것 같고 하루는 거의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벌거벗은 채로 벌렁 누워 잠을 잔 겁니다. 더 이상 불안한 시대는 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때 노아의 신앙적인 긴장은 풀린 것 같습니다.
 

고난의 때보다 잘 나갈 때에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러나 사실, 나이가 들어 하는 고생은 더욱 두렵습니다. 그래서 더욱 편안한 삶에 집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나이가 들면 믿음이 더욱 성숙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젊을 때보다 영적으로 더욱 긴장하고 매진해야 한다.’
육신의 힘이 떨어진다 해서 영적인 힘까지 떨어지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말로써 하는 간섭은 줄이고 기도로 섬기는 일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른으로서의 한 마디 말씀에도 영적인 권위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자식의 입장에서: 어른들의 실수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덮어 줄 수 있어야합니다.
이 노아의 실수에 대해 노아의 아들들이 취했던 반응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추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밖으로 나와서 그의 형과 동생에게 비난투로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첫째와 셋째 아들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들은 옷을 챙겨서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을 쳐서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었고 그들은 애써 아버지의 하체를 보려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이들의 행동을 꽤 구체적으로 묘사를 해 놓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이 아주 중요한 행동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의 행위가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부모에 대한 공경하는 태도입니다.
 

부모는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공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모두 실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젊었을 때보다는 체력도 딸리고, 집중력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자연히 이전보다 더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님의 연약한 모습은 머잖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3. 부모에 대한 공경은 축복과 저주의 분기점입니다.(25-27)
그런데 이런 부모에 대한 공경 여부가 축복과 저주의 분기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노아는 술이 깬 후에 함이 했던 행위와 그 이후에 셈과 야벳이 한 조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함에게는 저주를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합니다.
25절에 함 대신에 함의 아들 가나안의 이름이 나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25)
이 구절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셈의 후예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가나안의 후예들이 사는 가나안 땅을 점령함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부모 공경의 태도가 축복과 저주의 분기점이 되어버린 사실을 발견합니다.
6:2에서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모 공경은 사람에 대한 첫 계명일 뿐만 아니라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그것에 대한 약속은 하는 일이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복입니다. 그런데 장수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 되려면 건강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은 잘되어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이 복을 자신의 허물을 덮고 아버지의 권위를 지켜준 아들에게 축복했고, 바울은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으로 약속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복을 구하는 사람을 천국 소망이 없는 믿음 없는 사람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이런 복을 받은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장된 하늘 상급 쌓는 기간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복은 정말 사모가 되고 기대해봐야 할 복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항상 축복의 분기점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부모공경을 통해 이 복을 온전하게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후 20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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